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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해외 여행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 5 - 세비야 (1) 세비야 대성당과 주변

by 하늘 호수 2017. 5. 8.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은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은 바티칸 대성당이고, 두 번째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으로

이슬람 사원은 사라졌지만 넓은 폭의 형태는 메타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을 받았다.

 

세비야 대성당은 1401년 착공하여 125년뒤에 완공되었으면 세계 3대 성당으로 불리우며

고딕과 신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섞여 있다.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되찾은 영웅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스페인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안치실 앞에는 무리요의 그림 <성모수태>가 있는 회의실,  고야와 수르바란 등의 그림이 있는 성배실이 있다.

안쪽에는 성령강림을 나타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왕실 예배당을 둘러싼 철책, 15세기의 합창대,

주 예배당에 있는 성화 장면이 조작된 황금색 목재 제단 등이 있다.

중앙 복도 오른쪽에 있는 콜럼버스의 묘에는 옛날 스페인을 다스린 네 왕(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이 관을 메고 있는 상이 있다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은 오렌지 정원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12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사원의 한 부분이다.

17~18세기에 들어와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히랄다 탑(La Giralda)

1198년 이슬람 사원의 탑인 미나레트로 세워졌지만 세 번의 증축을 거치면서 높이 97m의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히랄다 탑은 계단이 없고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데

이슬람 시대에는 미나레트를 오르기 위해 당나귀를 타고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탑 정상에 오르면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28개의 종이 매시간 아름다운 소리로 종을 연주하는데, 축제 기간에는 종이 360도 회전하면서 엄청난 소리를 낸다.

탑 꼭대기에 한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 여인상은 ‘엘 히랄디요’라고 하는데,

‘엘 히랄디요’는 ‘바람개비’를 뜻하는 말로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처럼 회전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례대

 

 

 

 

 

 

 

 

 

엄청나게 큰 성체현시대

그리고 예수님의 탯줄이라는데~~~ ???

 

 

 

 

무리요 <성모수태>

 

 

 

 

 

 

콜럼버스의 묘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그리고 오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꽂혀 있는데 국토
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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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대성당 주변에서 담은 그림들이다.

 

 

 

 

 

 

 

 

 

 

 

 

 

 

 

세비아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문화 중심지로서,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수도로서, 스페인의 신세계 탐험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는 히스팔리스로 알려졌으며 서(西)고트족의 중심지였다가 711년에 무어인들에게 점령당했다. 아바스 왕조 및 그후의 알모라비드와 알모아드 동맹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문화 중심지였다. 1248년 페르난도 3세가 이끄는 스페인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이슬람교도들이 쫓겨난 뒤 이 도시는 급속히 지위가 격상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이 도시는 새로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1503년 카사데콘트라타시온(무역관)의 설립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과의 해외교역에 있어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17세기에 들어서 교역업이 쇠퇴한 반면 문화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도시 출신의 화가인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와 조각가인 후안 마르티네스 몬타녜스, 시인 페르난도 데 에라라 등은 스페인이 자랑하는 예술가들로 꼽힌다.

18세기에 부르봉 왕조가 이 도시의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19세기에 일어난 프랑스의 침략, 혁명, 내전 등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1847년에 부활절에 이은 연례 축제로 4월 축제가 마련되었다. 1929년에 개최된 이베리아아메리카 박람회는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주변의 습지는 경작지로 개발되었다.

20세기에는 항구가 확장되었으며, 공업·상업의 요지로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주교관구로서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대학교(1502 설립)가 하나 있다. 주요수출품은 포도주·올리브·과일·코르크·광물이며, 공업으로는 담배·무기·섬유·도자기·기계류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세비야 대성당(1403~1506 설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다음백과사전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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