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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해외 여행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 8 -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by 하늘 호수 2017. 5. 12.

 

 

 

알함브라 궁전

이슬람 건축의 최고봉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던 그라나다에는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이자 상징인 알함브라궁전이 있다.

이 여행에서 많은 기대를 가졌던 장소 중의 하나다.

어릴적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연주곡으로부터 알게 되어

마음으로 동경하던 알함브라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설레임과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었었다.

 

많이 더운 날이었지만, 드넓은 궁전과 정원을 거니는 즐거움은 더 컸던 날이었다.



 

 


알함브라 궁전
많은 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예술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함브라 궁전을 꼽는다.

둘 다 이슬람 건축물이다. 알함브라의 매력과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시에나 산의 햇살을 받은 그라나다는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세련된 문화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어우러진 에스파냐의 고도(古都)이다.

도시 한가운데를 다로 강이 동서로 가로지르고, 강 건너편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이 차지하고 있다.

그라나다를 알함브라의 도시라고 말한들 어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그라나다, 그것도 알함브라 궁전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1469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 두 왕국은 합쳐졌고,

이는 알함브라를 정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에스파냐 군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이던 나스르 왕조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1492년 새해 첫날 밤, 마지막 왕 보압딜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궁전을 바치고 항복했다

-Daum 백과사전에서 옮겨옴 -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요새다.

언덕 사이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알카사바 정상에 다다른다.

알카사바는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채로, 30여 개의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벨라 탑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새하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터를 잡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이슬람 마을 알바이신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무렵,

에스파냐 병사들은 이곳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페르난도 5세의 약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이 무참히 짓밟혔다.

그렇다고 무슬림들이 순순히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처참한 역사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 피는 하얀 벽면을 붉게 물들였고, 아직도 군데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톨릭교가 이 땅을 휩쓴 지 이미 오래지만 알함브라 궁전은 여느 아랍 궁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랍어로 ‘붉은빛’이라는 뜻의 알함브라는, 겉으로 보면 붉은빛이 도는 견고한 돌 조각을 쌓아 만든 밋밋하고 조악한 궁전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축 양식이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큰 기대를 하고 온 관광객이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실망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뀐다.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투박한 껍질 속에 숨은 화려한 알맹이’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 Daum 백과 사전에서 옮겨옴 -

 

 

요새 - 그 당시 요새에서 6만명 정도가 거주했다고 한다.

 

 

 

 

 

망루와 망루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가지의 모습

 

 

여기가 알바이신 마을로 사람들이 서 있는 저 곳에서 알함브라의 야경을 감상했다.

 

아직도 집시들은 가파른 언덕에 땅을 파고 작은 집들을 지어 가난하게 거주하고 있고 한다.

 

 

 

 

 

 

원형경기장

 

 

이 꼬마아가씨에게 오늘은 무슨 날일까?

 

 

적이 침입한다고 하더라도, 요새가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길을 찾기가 어렵게 설계가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원으로 들어가기

 

 

 

 

 

헤네랄리페의 수로의 안뜰.

술탄 무하마드 3세때 지어진 여름별궁이다.

알함브라 궁전 옆에 있지만, 알함브라 궁전과는 분리되어 있다.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사벨 여왕은 “내 생애보다 더 귀한 궁전에는 더 이상 손댈 게 없다.”며 그대로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미 모스크를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 가톨릭의 상징적 승리를 충분히 새겨 두었다.

그러니 굳이 알함브라 궁전을 허물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 카를 5세가 르네상스풍으로 투우 경기장 같은 왕궁을 세운 것을 제외하면 알함브라는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카를 5세가 이 궁전을 싫어하거나 파괴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알함브라 예찬론자였다.

 “알함브라를 잃은 자여, 불쌍하도다. 알함브라를 버리는 삶을 택하느니 차라리 알함브라를 내 무덤으로 삼을 테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알함브라 궁전에 강한 애착을 보였고, 보압딜의 결정을 안타까워했다.


붉은 석양이 유난히 낮게 깔린 어느 날, 그라나다의 어느 무명 시인은 보압딜의 항복을 두고 목 놓아 울었다.

불운한 왕이여!

죽을 용기가 없어 그라나다를 떠나는 못난 왕이여!

남아 있는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할진대

그까짓 왕관 하나 벗어던지지 못하고

그라나다를 떠나 가느뇨.

 

-Daum백과사전에서 옮겨옴 -

 

 

 

 

 

 

녹음이 푸르른 알함브라 궁전 그리고 저 멀리에는 설산이 보인다.

 

참말 아름다운 곳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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