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늘호수 이야기/- 성지따라 발길따라131

삼례성당 - 전주교구 삼례성당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익산시 창인동성당의 공소로 설립되었으며 한창 한국전쟁중이었던 1951년 5월 22일에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직후의 혼란기인 1954년에 공사를 시작해 1955년 8월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삼례성당의 건축면적 409.2m²의 지상 1층 규모로써 주보성인은 ‘성모 승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면 중앙에 높은 종탑, 좌·우측에 8각 첨탑이 설치되어 있고 종탑 아래쪽 주출입구와 보조출입구가 모두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붉은색 벽돌 건물로써 2016년에 개봉한 독립 영화 '삼례'의 배경이었던 영화 촬영지라고 합니다. https://blog.naver.com/hanpig2000/20042640397 한국의성당건축(12-2)-삼례성당(김정신) 한국의 성당건.. 2022. 2. 7.
나바위성당 2 - 익산 - 전주교구 1882년 나바위 공소가 설립 되고 1897년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장약슬(요셉)신부가 임명되어 1907년 성전을 신축하였고, 당시 신자수는 2,900여명이었다. 1930년경에는 신자수가 3,200명에 달하였으며, 안대동(현 함열) 본당, 군산(현 둔율동) 본당, 이리(현 창인동) 본당 등을 설립, 분리시켰다. 일제시대에는 신사 참배 거부에 앞장섰으며, 6.25 전쟁 중에도 미사가 끊이지 않은 유일한 본당이었다.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20리쯤 떨어진 김가항이라는 교우촌의 성당에서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님의 집전으로 한국인 첫 사제로 서품된다. 조선교회창립 61년만의 일이었다. 8월 31일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라파엘호’라고 이름.. 2022. 2. 7.
함열성당 - 전주교구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군 안대동에 있던 천주교 성당. 개설 안대동성당은 1878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블랑 신부가 전교를 시작한 뒤 1910년 전라북도 용안군 용안면 안대동에 본당이 설립되었다. 1959년 1월에 본당을 용안군 용안면에서 익산군 함열읍으로 이전하면서 함열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안대동성당은 건물 골조만 남아 있다. 변천 안대동성당은 전라도 천주교 포교사에서 유서 깊은 성당이다. 1878년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이던 프랑스 신부 리델(Ridel)[李福明] 주교가 체포되어 청나라로 추방되자,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블랑(Blanc)[白圭三] 신부와 두세(Doucet)[丁加彌] 신부는 전라북도 용안군 용안면 안대동[현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동지산리]으로 피신을 와 .. 2022. 2. 7.
초남이성지 -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초남이성지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1756~1801)가 나고 자란 곳으로, 그와 그의 가족이 박해의 위협 속에서 복음을 몸소 실천한 삶의 현장이다. 신학문을 하는 이들과의 접촉으로 진리에 눈을 뜬 유항검은 1784년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었다. 숙식을 제공하면서까지 정성껏 교리를 가르쳤으며, 멀리 금구와 고창과 영광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호남 최고의 부자로서 평소에 가속들과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베풀었고 종들을 형제처럼 대하는 덕스러운 삶을 살았기에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가성직제도에서 사제로 활동하였지만 이 제도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남을 가장 빨리 알게 되어 동생 유관검과 .. 2021. 12. 30.
옛 구산성당 1836년 공소(公所)로 시작해 박해를 견디며 1979년 본당으로 승격해 올해로 공소 설립 180년, 공소 건축 60년이 된 구산성당은 미사강변도시 택지개발로 철거 위기를 맞았다. 구산성지(2001년 향토유적 지정)는 보존 결정이 난 반면, 구산성당은 존치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들을 중심으로 1956년 건축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난 7월 150여m 떨어진 새 부지로 원형이전 보존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들 신자들과 안창모 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등은 "구산성당은 김성우 성인 생가 터에 구산마을 신자들이 한강의 모래와 자갈을 나르며 시멘트를 비벼서 만든 신앙공동체의 상징적 종교 시설이자 역사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근대유산"이라며 .. 2021. 10. 1.
치명자산성지-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치명자(治命者)는 '목숨을 바친 자'라는 뜻이다. 승암산과 중바위로 불리던 이곳이 치명자산이라 불린 것은 1914년 전동성당을 건축하신 보두네 신부가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가족 순교자들을 산 정상에 모시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순교자들을 기리고 현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치명자산 정상에는 초남이에서 복음을 전하다 신유년(1801년)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가족 순교자 일곱 분이 합장되어 있다. 이 순교자들 중 다섯 분은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복되었다. 치명자산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산길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골고타 십자가의 길'이 있다. 순교자들의 신앙을 묵상하며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는 .. 2021. 6. 3.
영광순교자기념성당-광주대교구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영광은 한국천주교 창설시기부터 복음이 전해진 곳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는 이화백, 복산리 오씨등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영광성당은 1937년 설립되었다가 폐쇄된 후, 1965년 재설립되었으며, 2010년 9월 16일 순교자기념성당으로 지정되었고, 현 건물은 2014년 6월 28일 축성되었다. 영광순교자기념성당은 타원형 평면으로 물고기와 배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상징조형물 문은 배의 돛과 만장의 이미지로 순교를 상징한다. 영광시내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등대 형태의 종탑은 복음의 빛을 주제로 한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화하였다. 성당 내에 있는 영광순교자기념관은 본당설립 80주년(1937-2017)을 맞아 2017년 5월 13일 영광순교자들의 위대한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 2020. 8. 21.
청주교구 배티성지 배티성지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오지인 데다가 충청좌도와 우도, 경기도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살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신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1837년에는 성 모방 신부님이 배티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였고 1850년에는 성 다블뤼 신부님이 조선대목구 신학교를 설립한 뒤 두 칸 짜리 초가집을 매입하여 학교 건물로 사용하였다. 1853년 여름부터 최양업신부님이 이 초가집에 살면서 전국 다섯 개 도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순방하는 한편 틈틈이 신학생들을 지도했다. 그 후에 메스트로 신부님 페롱 신부님, 프타니콜라 신부님이 사목 활동 거점으로 삼으셨다. 다블뤼 주교님은 이곳에서 견진성사.. 2020. 7. 17.
청주교구 연풍순교성지 연풍성지 박해가 계속되던 시절. 연풍의 산간 지역은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풍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넘는 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습니다. 그럴 때면 신부님들은 연풍 골짜기에 숨어살던 교우들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습니다. 이내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가 되었고, 신앙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은 황.. 2020. 7. 16.
원주교구 배론성지 원주교구 배론성지 배론은 박해 시대 교우촌이며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들을 함께 간직한 순교자들의 요람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가 《백서》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1855년 한국 최초의 격식을 갖춘 신학교인 성 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배론[舟論]이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골짜기의 형상이 배 밑바닥 같다고 한 것에서 부쳐진 이름으로, 본래는 팔송정 도점촌이며, 1890년대 이래 현재의 행정 구역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1861년 6월 15일, 최양업(崔良業, 1821~1861, 토마스) 신부가 문경에서 병사하자 약 5개월 간 배티에 가매장했다가 11월 초 이곳 배론으로 그 시신이 이장되어 베르뇌 주교의 집전으로 안장되었다. 배론 신학교는 186.. 2020. 6.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