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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1767

무등산 1 - 증심사 2020년 3월 30일은 무등산에 처음 접근한 날이다 처음이라 멀리까지 못 가고 증심사까지만 올라가 보았다.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길목의 증심사 계곡 물 흐르는 소리는 얼마나 시원하고 생기가 솟아나던지... 증심사는 통일신라 860년(헌안왕 4) 철감선사(澈鑑禪師)가 창건하였고, 1094년(선종 11)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수하였으며, 1443년(세종 25)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이 자신의 녹봉으로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중창하였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임제종(臨濟宗) 운동의 본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중수를 거듭하다가 1951년 4월 50여 명의 무장공비들에 의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버렸으며, 1971.. 2020. 7. 25.
청주교구 배티성지 배티성지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오지인 데다가 충청좌도와 우도, 경기도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살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신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1837년에는 성 모방 신부님이 배티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였고 1850년에는 성 다블뤼 신부님이 조선대목구 신학교를 설립한 뒤 두 칸 짜리 초가집을 매입하여 학교 건물로 사용하였다. 1853년 여름부터 최양업신부님이 이 초가집에 살면서 전국 다섯 개 도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순방하는 한편 틈틈이 신학생들을 지도했다. 그 후에 메스트로 신부님 페롱 신부님, 프타니콜라 신부님이 사목 활동 거점으로 삼으셨다. 다블뤼 주교님은 이곳에서 견진성사.. 2020. 7. 17.
청주교구 연풍순교성지 연풍성지 박해가 계속되던 시절. 연풍의 산간 지역은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풍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넘는 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습니다. 그럴 때면 신부님들은 연풍 골짜기에 숨어살던 교우들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습니다. 이내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가 되었고, 신앙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은 황.. 2020. 7. 16.
물가에 심긴 나무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 예레미야서 17, 7-8 ) 2020. 7. 16.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 스스로 작성한 부고 공개돼 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생전 스스로 작성한 부고가 공개됐다. 모리코네의 아들이 7일 공개한 이 글은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I, Ennio Morricone, have died)'로 시작하는 원고지 6매 분량의 글이다. 모리코네는 이 글에서 "항상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친구들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내 죽음을 알린다"라며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며 이 같은 방식의 작별을 택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모리코네는 친구들과 형제, 자녀, 손주들에게 차례로 이별을 고한 후 아내인 마리아 트라비아에게 특별히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보낸다"는 것으로 글을 끝맺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음악 작곡가로 꼽히는 모.. 2020. 7. 7.
그리움 저 너머에 계신 님은 언제 오시려나 기다림에 지쳐서 길어져 버린 그리움 2020. 7. 7.
서울주보 사진 (2020. 7. 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2020년 7월 5일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축일) 주보 저의 사진입니다. - 홍덕희 아녜스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 2020. 7. 5.
탄생 1 맑지 않은 물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있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잠잠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새로이 피어나는 탄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라도 생그럽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 순간은 창조의 시간... 2020. 7. 1.
원주교구 배론성지 원주교구 배론성지 배론은 박해 시대 교우촌이며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들을 함께 간직한 순교자들의 요람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가 《백서》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1855년 한국 최초의 격식을 갖춘 신학교인 성 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배론[舟論]이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골짜기의 형상이 배 밑바닥 같다고 한 것에서 부쳐진 이름으로, 본래는 팔송정 도점촌이며, 1890년대 이래 현재의 행정 구역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1861년 6월 15일, 최양업(崔良業, 1821~1861, 토마스) 신부가 문경에서 병사하자 약 5개월 간 배티에 가매장했다가 11월 초 이곳 배론으로 그 시신이 이장되어 베르뇌 주교의 집전으로 안장되었다. 배론 신학교는 186.. 2020. 6. 30.
원주교구 용소막성당 원주교구 용소막 성당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에서는 풍수원,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1904년에 설정된 교회다. 병인박해 이후 수원 지방에서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로 교우촌이 형성된 이곳에는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고 성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기고 선종하신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의 유물관이 설치되어 있다.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용소막 성당은 당시의 성당 건립 방식이었던 로마네스크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성당과 좀 다른 모습은 성당의 앞부분에 종탑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아마 당시 성당 건축에서 새로운 시도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용소막에 천주교가 전해진 시기는 병인박해 무렵부터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멀리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이 강원도 평창..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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